원두커피처럼 잔잔한 일본영화 - 세상의 끝에서 커피 한 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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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3. 9. 01:05 영화


마음을 치유하는 고요한 영화

일본영화는 특유의 잔잔한 분위기가 있다. 

잔잔해서 자칫하면 지루할 수도 있지만 절대 그렇게 흘러가게 내버려 두진 않는다.

잔잔하면서도 깊이 있게 표현하고 정갈하게 영상을 담아내서 보는 것만으로도 '내가 참 행복한 세상에 살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끔 만든다.

그래서 난 머릿속이 어지러울 때는 일본영화를 많이 보는 편이다.

리틀 포레스트를 비롯하여 어쩌면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같은 영화 말이다. 

그래서 보게 된 이 영화 '세상의 끝에서 커피 한 잔(さいはてにて ~やさしい香りと待ちながら~, The Furthest End Awaits)도 그런 치유 영화 중 하나였다. 

또한 이 영화는 본격 바리스타 자격증 뽐뿌 오게 하는 영화였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들 

미사키는 어린 시절 헤어졌다는 아버지가 8년 전에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말 그대로 세상의 끝과 같은 곳에 커피 원두를 로스팅해서 파는 원두 가게를 차린다. 

이름은 요다카 블렌드, 요다카는 미사키의 별명이다. 

그리고 이웃에 살고 있는 싱글맘 에리코는 두 아이를 홀로 키우기 위해서 매일 같이 돈을 벌러 기차를 타고 타도시로 일을 나간다. 



민박집을 하는 에리코의 집에는 초등학생 두 아이 아리사쇼타만이 있다. 

두 아이의 엄마라고 하기에 아직도 젊고 예쁜 에리코는 자기를 사랑해줄 누군가를 끊임없이 기다리고 별로인 남자와 사귀기도 한다. 

두 아이 아리사와 쇼타는 늘 엄마를 기다리는데 영화를 보다보면 꼭 엄마를 기다린다기 보다 자기들을 돌봐 주고 기댈 수 있는 존재를 기다리는 듯 하다.

이 두 아이 앞에 홀연히 나타난 미사키가 아이들과 인연을 맺게 되고 아리사는 요다카 블렌드에서 미사키를 돕게 된다.



힐링 포인트

아무래도 원두커피를 내리는 장면이 아니지 않나 싶다. 

시골 땅끝 마을에 자리잡았기에는 너무도 특출난 미사키의 로스팅 기계로스팅 솜씨 그리고 그녀가 내리는 커피는 그 동네 초등학교 선생님인 구미를 비롯해 맛 보는 모두를 행복하게 한다. 

위의 사진과 같이 천천해 내리는 핸드드립커피의 거품이 올라오면서 영상으로만 봐도 기가 막히게 향기롭고 맛있는 커피가 내려진다. 



구미가 갓 내린 커피 한 잔을 마시고나서 '아 이 커피 정말 맛있다'라고 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부엌에 가서 핸드드립을 내리고 있었다. 

탄자니아 원두 등 아리사와 쇼타에게 커피 원두의 원산지와 원두 패키지 라벨 붙이는 방법을 알려주는 미사키를 보면서 나도 바리스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잠깐 했다. 



기억에 남는 아이들

극 중 아리사 역을 연기한 소녀가 매우 감정을 잘 표현한다.

시종일관 불안감에 가득찬 눈을 하고 학교를 비롯해서 동네 슈퍼 그리고 엄마에게까지 의심을 받는 아리사가 너무나 안됐지만 미사키를 만나고나서 안정감을 찾아가는 모습이 짠했다. 

천성이 밝고 서스럼 없는 성격인 듯한 쇼타는 미사키와 커피 자루 안에서 달리기 시합을 하는 등 어찌보면 다소 우울할 수 있는 이 영화를 밝게 만들어준다. 



이 영화를 보면서 아이들의 친모인 에리코보다 이방인인 미사키가 아이들의 마음을 훨씬 잘 이해해주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에리코와 함께 있을 때는 그녀가 아이들에게 화를 내지 않을까 조마조마했지만 미사키와 함께 있을 때는 왠지 모르게 안심이 됐다...)

그리고 마치 천천히 진하게 그리고 맑게 내려지는 더치커피처럼 이 영화를 볼수록 집중하고 빠져들게 되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이 영화 또한 전형적인 일본의 슬로우 무비이다. 

기약없는 기다림덧없는 약속또 다른 만남 그리고 인연이 있고 그 사이에 드립커피가 자리하여 사람과의 관계를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혼자서 드립커피 한 잔 하면서 보면 딱 좋을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