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 왜 갑자기 나에게 모두 등을 돌렸을까?

Posted by 2분 전
2016. 12. 20. 14:03

  한국의 독자들에게 무라카미 하루키는 현존하는 가장 유명한 작가 중 한 사람일 것이다


최근에는 비단 한국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널리 인정받아 노벨 문학상 후보로까지 거론될 만큼 21세기 소설을 대표하는 작가이다. 내가 하루키를 처음 접한 계기는 다들 그렇듯이 노르웨이의 숲이었다. 이제까지 읽어왔던 한국소설과는 다른 유려한 문체와 이미지즘, 감각적인 분위기 환기, 청춘기때 상실의 아픔과 생과 사 그리고 사랑의 의미를 담담한 문체로 써 내려간 명작이었다. 다른 작가들과 대비해 볼 때 하루키의 소설은 기승전결이 명확하지는 않다. 섣불리 판단 내리고 정의 내리는 것을 유보한 채 작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전달하고 그것에 대한 의미를 느끼는 것을 독자들에게 맡긴다. 그래서일까? 하루키의 소설을 읽고 나면 그 어떤 책보다도 짙은 여운이 맴돈다.




이번에 읽은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역시 한층 더 깊어진 하루키의 문체와 관념을 엿볼 수 있었다. 그의 소설은 정말 소설 그 자체의 역할과 기능에 충실하다. 감동적이고 탐미적이며 철학적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소설을 정점으로 하루키만의 고유한 문학 세계를 완성해낸 느낌이 든다. 그 만큼 다자키 쓰쿠루의 순례 이야기는 독자의 심금을 제대로 울리는 소설다운 소설이었다.


이 이야기는 다자키 쓰쿠루라는 남자의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된다. 서른 여섯 살인 그는 철도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스무 살 때 절친한 친구들 4명에게 일방적으로 절교를 당한 아픈 경험이 있다. 그 경험은 아프다라는 간단한 말로는 설명되지 않을 정도로 그에게는 크나큰 절망이자 고통이었다. 피가 통하면서 맥박이 뛰는 인연의 동맥을 손도끼로 가차없이 싹둑 잘라내버린 듯한 고통스러운 기억이다.

자신의 존재가 철저히 거부당한 채 그는 몇 달 동안 죽음만을 생각하며 지냈고 누구와도 마주하지 않고 마음을 닫은 채 자기자신의 일부를 잃어갔다. 이윽고 그는 그 일을 잊은 척 하며 서서히 외관상으로는 정상적인 삶의 궤도로 돌아왔지만 그 누구에게도 이 사실을 털어놓지 않고 타인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다소 외로운 삶을 살게 된다. 하지만 여자친구인 사라를 만나게 되면서 그녀에게 잊은 듯 살아왔던 그 이야기를 털어놓게 된다. 사라는 그 친구들의 정보를 찾아서 다자키 쓰쿠루에게 건네주며 지금이라도 그 친구들이 왜 그랬는지 알아보라며 그의 죽어버린 일부의 흔적을 찾아낼 수 있도록 격려해준다. 그럼으로써 다자키 쓰쿠루는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는 네 명의 친구들을 찾아 순례의 여정을 떠나게 된다


 글이 계속될 수록 알 수 없는 아픔이 몰려와 혼자서 눈물을 잠시 흘렸었다. 아마도 지나가 버린 시간에 대한 아쉬움과 더불어 돌이킬 수 없는 회한 그리고 어떻게 살던 인간이라는 존재는 상처를 받는 존재라는 진리를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귀감이 될 만한 훌륭한 작가이다.